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을 해보자.
아무것도 안 하는 여행이 가능할까?
아니 아무것도 안 한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 같고
'게으른 여행'이 더 알맞는 표현 같다.
여행이라는 것이
일상에서 벗어나 자주 볼 수 없는 것,
일상에서 해보지 못한 것,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을 해보려고 가거나
특별한 테마를 정해서 가는 경우 또는
휴양을 목적으로 가는 등 사람마다 다양한 목적이나 목표를 두고 가는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을 통틀어 다르게 표현하면
바로 일상과 다른(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해
일상의 문 밖으로 나서는 것이 여행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막상 계획 없이 가도 무엇인가를 하게 되고 또 무엇인가를 보게 되는 것이 여행이다.
몇 년 전부터 제주에 가면서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늘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움직이기 위해 노력했던 –직업상으로도- 삶이었다.
여행도 시, 분까지 계산하며 계획을 짰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준비도 대충하고 가보고 싶은 곳이나 하고 싶은 것도 어렴풋한 얼개만 그리고 떠나다가
이제는 아예 그런 생각도 안 하고 떠난다.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지만
막상 계획 없이 가도 무엇인가를 하게 되고 또 무엇인가를 보게 된다.
이번 여행은 작년에 시기를 마추지 못해 담지 못한
산수국을 담기 위해서가 전부다.
작년에 사전 답사해둔 곳들을 다시 가서 적기에 촬영하는 것이다.
그 외에는 생각해두지 않았다.
8일을 있었는데 족은 노꼬메 상잣길을 5일간 찾아갔다.
그래도 상상했던 그림은 얻지 못했다.
(그래서 내년에 또 가게 될 것이다.)
뭘 해야 된다는 것이 습관으로 베어 있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는 것이 정말 어렵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하고 어색해서
뭔가 해야할 것을 자신도 모르게 찾고 있다.
책을 두 권 가져갔다.
산수국을 담고 나머지 시간은
숲 그늘이나 카페에서 책이나 읽으려고 생각했다.
4km 남짓 상잣길을 사진을 찍으며 느긋하게 한 바퀴 돌면 2시간 정도 걸린다.
상잣길을 돌고 나서 돌아 나오는 길에 승마장이 있어서
승마 트레킹이나 해볼까 하고 들어갔다
승마 강습을 받았다.
(몽골과 중앙 아시아에서 트레킹 승마도 해보고 초원을 신나게 달려보기도 했는데
실제 강습을 받아 보니 다르다. 이틀간 강습받으며 경속보까지 배웠는데 어렵지는 않다.)
3일 정도는 카페에 가서 두세 시간씩 책을 읽다 나왔다.
또 하루는 이호태우 해변에서 서핑을 배웠다.
이호태우에서도 드립 커피 하는 곳이 있어서
이틀을 찾아가서 책을 읽다
바다를 바라보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보내는 여행이 '게으른 여행'이다.
이 게으름이 내게 주는 것은
치유다.
크고 작은 상처들이 이 게으른 시간을 통하여 조금씩 아무는 것이다.
홀로 8일을 특별한 것을 하지 않고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주말 2박 3일은
지인 부부와 김녕해수욕장 근처 한적한 해변과
서귀포 휴양림에서 캠핑을 하고
카페 투어와 상잣길 하이킹, 야생화 촬영을 했다.
(노는 방식이나 취미와 관심이 비슷해서 같이 노는 게 즐겁다.)
숙박은
차박 2일,
캠핑 2일,
게스트하우스 3일.
차박이나 캠핑을 한 날은
씻을 곳이 없어서 동네 사우나를 세 번 갔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숙박한 다음 날은 느긋했다.
오름 백패킹을 할까하고 준비해 갔는데 하지 못했다.
날이 너무 습하고 비도 자주 와서 내키지 않았다.
비바람이 몰아친 날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주변 검색을 해서 '아르떼 뮤지엄'도 들렀다.
그러고 보니 1117번 지방도 관음사 진행방향으로
큰노꼬메 오름 전에 있는 큰바리메 오름도 올랐었다.
그냥 놀다 쉬다 하려고 떠난 여행인데 뭘 많이 했다.
하지만 충분히 여유 있었다.
계획없이 가면 동선이 겹치기도 하고
다음 일정을 생각하기 위해 차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해야 한다.
하루 한가지 또는 한두 곳 가 보는 것이 전부고
나머지 시간은 숲 그늘에서 쉬거나 책을 읽거나 멍 때리거나 하면서 보냈다.
그래도 충분히 좋은 여행이다.
생각을 조금 바꾸면 된다.
한번 가서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말자.
여행이 꼭 뭘 해야 하고 뭘 봐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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