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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배낭을 비우다

오봉산의 아침

by akwoo 2016. 12. 5.

 












2016. 12. 4

 


오랫만의 백패킹이다

가까운 곳이라

대형배낭에 주섬주섬 패킹을 하다 보니

무게가 23kg이 넘었다

처음 같이하는 친구가 있어

평상시와 다르게 약간의 식량이 추가하였다


어둑해지는 시각에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산행이지만

정상까지 1시간 정도 예상되어

배낭의 무게와 상관없이 가여운 마음이었다

산이름이 숫자로 된 산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 반복된다

오랜 게으름으로 운동을 하지 않았더니

골반으로 전해오는 무게가

오르막마다

걸음을 더디게 했다

1시간 반을 조금 넘겨 오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부의 데크에 배낭을 내려두고

어둠 속의 옥정호와

붕어섬을 조망한다

길을 따라

또는

외딴 집 주변으로 가로등이 켜져

산아래 세상이

오히려 선계처럼 느껴진다


데크에 원추형 타프를 설치하고

짐을 푼 후

고기를 굽고

가벼운 맥주가 미니탁자 위에서 오갔다

처음 온 친구의

영양학과

식단구성에 관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교육을

즐겁게

때로는

피곤하게 산다고 타박하며

산정의 밤이 깊어 갔다


서쪽 하늘에는 초승달이 사진처럼 걸려 있고

간간히 별이 밝아졌다

오늘의 커피는

파나마 게이샤.

이 커피를 선물해준 친구가

같이 시음하는 시간이다

아웃도어용 드리퍼에

리엑터로 끓인 뜨거운 물로 드립했다

은은한 향이 타프안에

습기처럼 채워졌다

게이샤를 처음

맛 본 두 명의 친구들이

기존 커피와 전혀 다른 느낌의 커피란다

밸런스가 워낙 뛰어나서

쓴맛이나 신맛이 두드러지지 않으니

당연히 느낌이 다를 것이다

그렇게 커피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밤이 더 깊어졌다


텐트안에서 잠자리는

옹색하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유쾌하고 즐겁다

밤새

빗소리가 들렸다

소나기처럼 빠르게

때로는

이슬비처럼 수런수런

때로는

바스락바스락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데크 옆 나무에 매달린 갈잎(가랑잎)이

바람을 만나는 소리다


아침은 구름이 많았다

데크에 메트리스를 깔고 나란히 앉아서

서두름 없이 산정의 아침을 즐긴다

아침놀이 간간히 구름에 색을 입혔다

시간에 따라

구름에 투과되는 빛의 굴절에 따라

노을 색도

구름의 색도

다양하게 변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좋은 사진을 담기에는

썩 좋은 날씨가 아니다

그래도

구름의 변화에 따라

원과 근

광각과

압축을 번갈아가며

사진을 담았다


사진을 담는 순간은

집중의 시간이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나만의 그림을 만나고

나만의 색을 찾아 내는

일념의 시간이다

조금 신비롭게 담기 위하여

색온도에 변화를 주고

노출을 2스톱 낮춰서 담았다.


뒤에서

커피를 생각난다고

은근한 압박을한다

모닝커피는

'케냐AA 스페셜티'

게이샤와 전혀 다른

묵직한 커피향이

산정으로 깔리고

빈 위장 속으로 흘러들었다

공복의 커피는

위에는 좋지 않지만

빈속으로 흘러드는

이 까칠한 느낌이 참 좋아서 가끔

공복의 커피를 즐긴다

요플레, 찐계란, 사과, 스프, 견과까지

사람이 한명 더 오니 아침 식탁이 풍성해졌다


하산은 빠르다

무게가 조금 줄었고

근육들도 하룻밤 사이에 적응이 됐다

1시간만에 주차장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톡톡 떨어진다


오랜만의 산행,

유쾌한 시간이었다

같이한 친구들도 좋은 시간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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