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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배낭을 비우다

선유봉

by akwoo 2020. 11. 3.

대장도 백패킹과 장자도 꽃 탐사 시 지나치는 길에

저 봉우리에서 백패킹을 한 번 해봐야지 했었다

 

같이한 일행이 이미 한 번 다녀왔고

텐트 사이트가 좁아서 조금 일찍 들어가야 텐트를 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오후 2시쯤 선유도 산행기점에서 만나

서둘러 산을 올랐다

 

푸석한 바위로 이루어진 선유봉은 정상까지 15분 정도 걸렸다

특별히 어려운 곳도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아서

어렵지 않다

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암봉 아래를 5분여를 내려 가면

바다로 뻗어나간 능선에 3~4동 텐트 칠만한 공간이 있다

 

도착하니 이미 1동의 텐트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바람을 피해 능선 아래쪽에 타프를 치고 싶었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다

텐트든 타프든 산 정상이나 능선상에 치는 경우에는

항상 조망권을 확보할 것인지

바람을 피할 것인지 갈등하게 된다

바람이 없는 날이면 큰 문제가 없지만

바람이 강한 날에는 산정을 찾는 가장 큰 이유인 조망권을 포기하고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곳은 그럴만한 곳이 없었다

일행은 텐트를

나는 타프를

각자 알아서 친다

바위로 된

암릉은 펙을 박을 수가 없어서 주변 돌을 모아

가이라인을 묶고 어렵게 타프를 설치했는데

초속 30~40m의 강한 바람이 간헐적으로 불어서

주변의 얼마 되지 않는 돌들을 모아 가이라인을 묶은 돌 위에 겹쳐두었는데도

타프는 심하게 흔들렸다

 

햇볕은 따가워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타프 그늘에 앉아 멍하니 올망졸망한 섬들을 바라보고

과거와 달라진

섬의 모습과

섬과 섬을 연결한 연육교의 부자연스러운 구조물,

바닷가에 밀려와 쌓여 있는 해양쓰레기들을 애써 외면하며

먼바다 쪽으로 눈을 돌려

반쯤 감긴 눈으로

산정의 조망을 맘껏 즐긴다

 

 

오래전에 읽었던

패터 보드맨과 죠 테스커가 지은 '창가방 그 빛나는 벽'을

얼마 전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해서

산행에 가져왔는데

몇 장 넘기기도 전에 또 다른 일행이 도착했다

비좁은 공간에 다시 한 동의 텐트가 추가되니

주변이 꽉 찬 듯했다

 

일행이 가져온 빵을 먹기 위해

커피를 내렸다

타프 아래

빵과 커피와 아이스 팩에 담겨온 멜론

그리고

내추럴한 환경과

그보다 더 내추럴한 담론까지^_^

시간이

금세 흘렀다

 

 

선유봉에서 바라 본 낙조

 

 

 

장자도 뒷쪽으로 해가 진다

 

 

 

선유봉 정상아래 소나무. 해가 지는 방향의 섬은 장자도다

 

서쪽 하늘과 바다가 빠르게 황금빛이 되어갔고

어선과 낚싯배들은

급하게 바다를 횡단했다

배가 지나간 바다는

물결이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며 커다란 곡선을 그렸다가 지워졌다

사진의 시간이다

흰구름이던 먹구름이던 떠있다면

바다와 산과 어울려

드라마틱한 그림을 만날 수 있었겠지만

하늘은 주황빛으로 채색만 되었을 뿐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는 해는 늘 숙연하게 맞아진다

 

저녁식사는 매식이다

헤드렌턴을 들고

선유도 해수욕장 근처 식당으로 밤마실을 간다

낮에 왔던 길로 20여분 산행을 해서 내려가면

선유도 해수욕장에 다다르고

근처에 식당가가 있다

관광지라

음식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그래도 저녁식사 준비를 안 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맥주 몇 병을 사들고 다시 텐트로 돌아왔다

 

 

 

 

선유봉에서 올려다 본 하늘. 가을 은하수가 떠있다.

 

 

 

선유봉 위 하늘은 별천지다.

 

짧지만 밤 산행은

선유도와 장자도, 대장도, 조금 멀리 신시도까지 군데군데

불빛 만드는 섬들의 야경이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느릿느릿 걸으며 야경을 조망하는 즐거움은

떠나온 자의 특권이다

 

텐트 사이트에 도착하니

타프가 무너져 있다

건조하지만 강력한 바람을 견디지 못한 타프는 가이라인이 끊어져 있었다

다시 끊긴 줄을 보수하여

타프를 세우고

일행이 가져온

우롱차 베이이스의 플레이버리 티인

마리아쥬 플레르의 '마르코폴로 블루'로 티타임을 갖었다

밤하늘에는 주변 불빛에도 불구하고

별이 빼곡하게 떠 있다

소원을 빌 틈도 없이 유성 하나가

짧은 궤적을 그리며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비행기는 긴 하늘에 점선을 잇고 지나갔다

바람은 간헐적으로 발작을 일으키듯

타프를 흔들었는데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니 일행의 텐트 한 동이 보이지 않는다

렌턴을 비추어 보니

일행의 텐트가 바람에 날려 절벽 바로 위에 걸쳐있다

텐트에 연결했던 돌이 빠지지 않고 텐트를 누르 있어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위기는 면했다

새로 산 카메라가 그 텐트에 있었는데....

(또 다른 일행은 그 상황을 보고 난 후부터 자신의 텐트가 날아갈까 봐 밤새 떨었다는....)

 

가을밤의 별들은 여름밤의 별보다 밝지 않다

북쪽 하늘 높은 곳에

다섯 개의 별이 거꾸로 된 W자 모형으로 떠 있는데

이 별자리가 그 유명한 '카시오페이아' 자리다

카시오페이아는 '안드로메다'공주의 어머니로 바다의 요정들을 화나게 만들어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안드로메다 공주를 제물로 받혀야 했고

포세이돈은 카시오페이아가 죽은 뒤 별자리가 되게 했는데

카시오페이아 자리는 그녀가 의자에 앉은 체 거꾸로 매달린 모습이라고 한다

가을 은하수는 이 카시오페이아 자리에 희미하게 뻗어있다

 

은하수를 몇 컷 담고 별 궤적 사진을 담으며

시간을 보낸 뒤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바람이 텐트와 타프를 얼마나 흔들어 대는지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선유봉 아래 텐트사이트에서 바라 본 아침 놀

 

 

 

 

 

 

 

선유도 동쪽에서 해가 떠오른다.

 

 

 

 

 

넓지 않은 텐트 사이트에 텐트 3동이 자리잡고 있다.

2020-10-9~10 전북 선유도

 

 

아침놀은

붉은 단풍잎에 빛이 흡수되어 붉은색과 핑크색이 혼합된 듯한 색상을 띠었다

구름이 잠시 노을에 물들었고

잠시 후 붉은 해가 신시도 대각산 위로 솟아올랐다

산정에서 맞는 일출은

언제나 신비롭다

해는

매일 뜨고 지지만

어디서 맞느냐에 따라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산정에서 맞는 일출과 일몰은

완벽하게 노출된 상태로

한순간 자연이 되는 순간이다

 

건성으로 사진을 몇 컷 담고

늘 그렇듯

빵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나는 주변에서 어슬렁 거리며 귀한 꽃이 있나 찾아보고

일행은 건너편 능선으로 새로운 시선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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