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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배낭을 비우다

동검은이오름(거미오름)

by akwoo 2020. 10. 13.

서쪽 봉우리에서 동쪽 봉우리를 바라본 모습. 능선 9시 방향에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동검은이 오름에서 바라본 높은오름.

 

 

동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듯한 능선과 분화구

 

 

분화구에서 바라본 서쪽 봉우리

 

 

 

 

 

동검은이오름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동북방향의 손지봉과 용눈이오름

2020-09-27

 

구좌공설공원묘지가 있는 높은오름 쪽으로 들어오면 접근이 쉬운데

사전조사 없이 오다보니 백약이오름 주차장에 파킹하고

포장과 비포장이 섞인 길을 따라 문석이오름을 좌측에 두고 진행하여

동검은이오름 안내 표지판 뒤쪽으로난 계단을 따라 올랐다

초입에서 정상까지 15분 정도면 충분하다

 

왜 떠나는 것일까?

 

떠난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이다

길을 만나고

그 길에서 익숙한 듯 낯선 사람을 만나고

익숙한 듯 다른 풍경을 만나고

같은 듯 다른 시간을 만난다

 

그 길이 좁아질 때면 숲을 만난다

숲에 들어서면

이름을 모를뿐 각자의 이름으로 서있는 수많은 나무를 만나고

여린 듯 강한 풀을 만나고 벌과 나비를 부르는 꽃을 만난다

숲의 고요를 깨트리는 새를 만나고

졸고 있는 거미도 만나고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의 사체도 만난다

어떤 날에는

노루의 놀란 눈을 만나고

숲 안개에 묻혀 떠돌아다니는 향기를 만나기도 한다

길 모퉁이를 돌면 불쑥 나무사이로 드는 빛에 놀라

벌떡거리는 심장을 만난다

 

가쁜 호흡 뒤에 산정에 서면

끊긴듯 이어진 다른 산들을 만나고

내려다 보이는 평범한 듯 다른 세상을 만난다

아무런 의미없이 지나던 바람의 생각을 만나고

고립이 주는 자유를 만나고

홀가분한 외로움을 만난다

모닥불 같던 하늘이 찰라에 들불로 번지는 진홍빛 노을을 만나고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의 저마다 다른 사연을 만난다

그리고

그 많은 허물까지 사랑해 줬던

 완전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만난다.

 

크지 않은 작으마한 오름이다

다른 오름과 다르게 원형 분화구가 아닌 한쪽이 탈출구처럼 열려 있고

작은 초지가 형성되어있다

그 초지에는 군데군데 수크렁이 모둠을 이룬 체 바람의 언어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발길이 만들어낸 길은

능선과 분화구 초지쪽으로 갈래를 이루다가 서로 만난다

 

동검은이오름은 오름 자체보다 주변 조망이 훨씬 매력적이다

표고가 높지 않지만 사방으로 다양한 오름을 조망할 수 있고

제주 특유의 농경지와

촌락, 바다를 담을 수 있다

 

왔던 길로 되돌아 가면 15분이면 될 길을

묘지 쪽으로 내려서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길을 잃어 봐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평소의 내 주장을 실행하느라

길을 잃기 쉽다는 정보를 무시하고

미로게임을 시작했다

길을 막는 가시덤불로 인해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며 겨우 조금 넓은 길을 찾아 내려왔고

그 길을 따라 주차장 방향으로 진행을 했는데

주차장 근처에 다다라서 다시 길이 막혔고

가느다란 흔적을 찾아 돌고 돌아 1시간이 넘게 걸려 동검은이오름 초입에 도착했다

옷은 가시에 할퀴어 여기저기 실밥이 터졌고

점심시간을 넘겨서 허기가 졌다

 

총5.4km를 걸었고 2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길을 떠나

오름의 아름다운 모습과 거친 속내를 만나

내 여백에 점 하나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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