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25~26
리듬이 깨졌던가
슬럼프가 왔던가
매너리즘에 빠졌던가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상상력이 없이 사물을 대한다는 것은
여행-등반이나 사진을 포함한- 삶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트린다
새로움에 대한 탐구와
사물과 환경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차이가
내가 지불한 대가의 값어치를 결정한다
올 내내 변화가 사라졌다
변화란 갑자기 어느 순간에 찾아오기도 하지만
사소하게 여기는 것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찾아지기도 한다
문제는 다른 시선을 찾아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큰노꼬메오름은 작년 겨울 눈이 내리 릴 때 올라 보고 두 번 째다
큰노꼬메 주차장에서 오르는 대신 족은노꼬메 주차장에 파킹 했다
이 주변은 큰노꼬메, 족은노꼬메, 궷물오름이 모여있고 서로 연결되는 트레일이 있다
세 오름마다 주차장이 따로 있어서 원하는 쪽을 선택하면 된다
이번에는 일행이 오름 아래 분위기 좋은 숲길에
텐트를 치고 싶어 해서
족은노꼬메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족은노꼬메 주차장에서 서쪽 둘레로 진입하여
궷물오름 삼거리를 거쳐 큰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 안부로 들어선 후
큰노꼬메오름을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 내려온 후
나머지 족은노꼬메 둘레를 돌아 처음 시작했던 주차장에 도착하는 코스로 진행했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돌면 5.3km쯤 되고
사진을 담고 쉬기도 하면서 느긋하게 걸으니 2시간 30분쯤 소요되었다
폭 2m~3m 정도 되는 트레일은
좌우로 소나무와 삼나무 침엽수 등이 섞여 있고
길 가장자리는 수국이 채워져 있었다
때늦은 수국이 간간히 피어 있고
촛대승마, 이삭여뀌도 나뭇가지 사이로 드는 빛에 얼굴을 내밀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숲은 온전히 내 것이고
호흡 또한 거칠지 않아서
들숨과 날숨을 세며 깊은 호흡으로
숲을 받아들였다
길은
직선과 곡선
오르막과 내리막의 편차가 크지 않아
편안했고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과
산책을 즐기는 현지인들을 종종 만났다
이곳은 수평의 세계다
벽등반이 주는 아득한 고독과
팽팽한 긴장,
크럭스를 넘기 위한 위험한 동작도 없다
산이라는 표현보다
숲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한 곳이다
드물게 꽃을 만나면 말을 걸어보고
숲의 고요를 견디지 못한 새소리에 고개를 돌려 이름을 묻기도 한다
선이 고운 곳에서는
사진을 담고
같이 걷는 동료의 사진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
어색하지 않게 이어지는 곡선은 긴장을 완화시켜주고
마음을 평화롭게 해 준다
족은노꼬메와 큰노꼬메의 사이의 안부에서 큰노꼬메로 오른는 길은 갑자기 급하게
솟는다
10여분 계단을 오르면 큰노꼬메 정상에 다다르고
시야가 트이면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동쪽은 덩치 큰 한라산과 노로오름이 있어 조망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남서방향은 바리메오름, 새별오름을 비롯하여 금오름 등 올망졸망한 오름들이 보이고
협재와 한림의 풍경도 조망된다
이곳 트레일의 가장 큰 장점은 이처럼 느슨한 숲이 주는 편안함과
시원스러운 조망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상에서 머물며 사진을 담고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억새의 흔들림에
잠시 흔들려 본다
하산하여 족은노꼬메의 동쪽으로 돌아 또 다른 모습의 트레일을 걸으며
텐트사이트를 봐 두고
잘 정돈된 듯 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
박준비를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텐트사이트에 도착하니 어둠이 가까이 다가왔다
각자 텐트를 치고
가운데에 모여 준비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게이샤커피를 드립 했다
숲은 더 고요해졌고
이슬이 내리면서 커피 향은 더 짙어져
대기에 흐르는 작은 이슬 입자를 따라 주변을 맴돌았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밤의 숲과 커피의 향과 잔잔한 음악에
한참을 머물렀다
소나무 숲 사이로 수많은 별이 떴고
달빛도 제법 밝았다
텐트를 부재로 활용하여 별 사진을 몇 컷 담은 후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밤에 소나기가 제법 내렸다
후드득 비가 텐트를 때리는데
아무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텐트 문을 열고 주변을 살펴보니 특별히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그래도 동료를 몇 차례 불러 비 온다고 알려 줬는데 꿈적도 안한다^^
게으른 인간들....
일출 전 일어나 큰노꼬메를 올랐다
대기가 습이 많아 조금 탁했다
감동 없는 일출은 한라산 뒤쪽에서 떠올랐다
아침 공기는 낮과 낙조경 공기와 다르다
공기가 다르니
바라보는 풍경도 어제 오후와 다른 느낌이다
방향을 가늠하며 오름들의 이름을 짐작해 보고
다음에는 또 어떤 오름을 올라 볼까 생각해 둔다
역광을 이용여 실루엣 사진을 담아보고
차분히 주변을 조망한 후에야 하산했다
빵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텐트를 말린 뒤
짐을 싸서 주차장으로 회귀하면서
노꼬메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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