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빛이 당신 안의 빛을 압니다." -나마스떼 -.
나무하는 사람을 유난히 많이 만난 여행이었다.
쿰부도, 안나푸르나도 이곳도 집마다 대부분 연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장작을 패 쌓아두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연료로 사용 되는 것이 야크 똥이다.
랑탕계곡 초입에서 만난 이 여인은 대나무로 만든 망태
(예전에 시골에서 본 것 같은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에 마른낙엽을 가득 담았다.
이 모습은 전혀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삼사십년 전 우리의 시골에서도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숙명처럼 짐을 진다.
지게 / 유재문
삶이란 놈이 올라 앉아
어깨를 뜯어 먹는다
뼈대만 앙상한 빈 지게에
시린 무릎 꿇으니
혼자 서지도 못하는 작대기만
넘어질 듯 부축이다
백마강 사공이 실어간 삶의 미로,
낫 들고 꼴을 베어 지게 망태 올라타고,
목 메인 막걸리는
굽은 허리 달래건만
속절없는 강물은 하늘 품어 흐르네.
산 아래 굴뚝
몽글몽글 춤을 추니
높다란 풀 더미
덩달아 덩실덩실,
주인 없이 잘도 간다.
던져버린 짐 더미,
지쳐버린 지게 작대기,
아무렇게나 드러누어
드르렁 드르렁
돌아보는 이 없는 삶을 지운다.
남자의 상징인 칼을 허리춤에 차고 땔감을 잔뜩 짊어진 노인의 모습은 결코 약해보이지 않는다.
땔감을 짊어진 노인과 그 옆을 지나치는 배낭을 멘 어린 트래커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아주 작은 다랑논에 양배추와 감자 그리고 배추가 심어져 있다.
그리고 두 명의 여인네가 밭고랑을 갈고 다른 곡식을 심을 준비를 하고 있다.
크지 않은 일터라 그리 고되어 보이지 않았다.
넘치지 않는 삶이라 걱정할 것도 없다.
그들은 먹을 만큼만 심고 가꾼다.
그러니 삽과 괭이 하나씩이면 충분하다.
많은 사람이 살지 않으니 빨래로 인한 환경오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은 이 정도의 작은 오염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지녔다.
빗물을 받는 수조가 나무 위에 위태롭게 서있고 받아진 빗물은
호스와 저수조를 통과해 부엌으로 가고 빨래터로 이어져있다.
빨래하는 여인의 표정은 몸집만큼이나 여낙낙하다.
누더기 옷을 입었지만 골 깊은 주름과 적당하게 기른 수염,
목에 걸린 염주, 느긋하게 걷는 품에 도인의 기품이 느껴졌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목에 걸었던 염주를 빼서 손에 쥐고 앉아 자세를 잡아주셨다.
‘나마스떼!’ 인사는 이 한마디로 끝났다.
어깨에 짊어진 저 질량과 반비례로 삶의 무게는 가벼워지길.
빨간 나무 열매 아래 막 머리를 감은 여인의 머리 결이 봄볕에 윤슬처럼 반짝였다.
나 또한 땀을 씻고 때 씻어 물비늘처럼 반짝이는 영혼이고 싶다.
이 아이, 아직은 행과 불행도 모를 나이.
형은 길 아래서 맨손으로 나무를 꺾고 이 아이는 이처럼 나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민망하여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가이드에게 사진을 찍겠다고 아이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슬퍼 보이고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아마 네팔 사람들은 가난 때문에 불행할 것이라는 내 개념적 사유 때문 일 것이다.
아이는 아직 태생에 대한,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하여 판단하지 못 할 나이이고
누구나 하는 일이고 나무하는 일 자체가 즐거운 놀이 일수도 있는데
그냥 조금 잘사는 나라에 산다는 터무니없는 우월감으로
이 아이를 슬프고 아프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뭔가 줄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같이 간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초콜릿 한 봉지를 쥐어주며 괜히 민망하여 후다닥 일행을 좇아갔다.
허름한 집, 낡은 옷, 혹독한 추위와 부족한 먹을거리.
가족은 그 모든 불편함까지도 행복으로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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