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동반하지 않는 등반은 없다.
바보는 위험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돌아올 수 없는 한계를 넘어 버리는 사람이다.
위험이 없다면 모험도 없다.-
등반의 매력은 그 위험과 모험에 있다.
등반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산에 오르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등반가는 그런 위험을 충분히 인정하고
그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체력을 단련하고
인-도어(in-door)클라이밍을 통하여 등반루트를 수없이 숙지하며
그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하여 최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스스로 추구하는 등반스타일내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기 위하여 노력한다.
바보는 위험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넘어 버리는 사람이다.
샤브로베시에서 시작한 3일간의 카라반이 끝나고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었다.
캉친콤파에서 출발하여 4,984m의 체르코리를 넘은 후
다시 고도를 300m 정도 낮춰 BC를 설치한 후
다음 날 새벽 3시경에 얄라피크 정상공격을 할 예정이다.
일정상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체르코리로 가기 위해서는 얼음이 뒤섞인 제법 큰 내를 건너야한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은 뿌옇다.
낮은 곳을 찾아 돌다리를 만들고 내를 건넜다.
동혁이는 고소에 조금씩 무기력해졌다.
]이쯤해서 하산하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끝까지 가겠다고 한다.
2007년 초등학교 5학년 이던 딸아이와 함께 로부체를 등반할 때는 준비를 많이 했다.
딸아이와 계속 산을 다니며 훈련을 시켰었다.
오죽했으면 히말라야가 무등산보다 더 쉽다고 했을까.
하지만 아들 녀석은 내가 너무 바쁘기도 했지만 제법 운동신경도 있고
같이 등반을 다니면 잘 따라와 훈련을 생략하고 왔는데
훈련을 하지 않은 대가는 첫 날부터 확실하게 나타났다.
제대로 된 등반을 위해서는 일정에 따라 하루 이틀쯤 고소순응을 하며 쉬어야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시간이 많지 않았다.
원정등반 때마다 직장문제로 일정을 최소화했고
그것은 사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행운이 따라줘서
그동안의 원정등반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었다.
전문산악인이 아닌 취미정도로 등반을 즐기는 사람이 해외원정등반을 가기위해서는
가장 기초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3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등반능력, 비용, 시간이다.
나 같은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시간이다.
그래서 등반대상지에 맞게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는 가를 먼저 정한 후에 거기에 맞게 대상지를 선정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내를 설득 시켜야한다.
이 또한 등반만큼 어려운 난제이다.
등반시작 한 시간이 지나면서 호흡이 흐트러지고 두통은 심해졌다.
체르코리로 가는 길은 어렵지도 위험하지도 않았지만 오롯이 오름길만 있었다.
우리는 정상을 향하여 무력감과 싸우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고
포터들은 체르코리의 허리를 돌아 야크들만 다니는 길을 따라 BC사이드로 향했다.
동혁이는 한계에 다다른 듯 걸음이 현저히 느려지며 한걸음에 한 번씩 큰 숨을 몰아쉬었다.
더는 무리다 싶어 그만 내려가라고 하니
“아빠! 내가 내려가더라도 아빠가 등반을 계속 하신다면 저는 여기서 내려갈게요.
하지만 아빠가 저 때문에 같이 내려가신다면 저도 등반을 계속할게요.” 라고 한다.
가슴이 뭉클했다.
스스로 제 가방도 챙기지 못하고 초등학교 내내 숙제 한 번 해가는 걸 본적 없는 녀석이다.
불쑥 자라서 아빠에게 감동을 주는 아이를 캉친콤파의 롯지로 내려 보내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등반시작 4시간만인 오후 1시에 체르코리 정상의 턱 아래인 고도 4,700m에 도착했다.
여기서 1시간 반 정도면 체르코리 정상에 도착한다.
네팔 식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는데 향료가 비위를 거스르더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고소증으로 인하여 신체가 무기력해지면서 입맛도 없어지고 물 한 모금 넘기기도 비위가 상했다.
오후가 되면서 설산은 끊임없이 구름을 만들어 하늘로 뿜어냈다.
강렬한 정오의 햇볕에 만년설이 녹으면서 그 수증기가 구름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얄라피크가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기에는 경사도 심하지 않고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멀리 얄라피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체르코리 정상을 향하여 출발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체르코리의 뒤 꼭지로 나 있다.
너덜지대를 지나 1시간 반을 올라 도착한 정상은 케른과 룽다
그리고 희박한 공기로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
정상에 섰다는 기쁨이 내 모든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면서
오르는 동안의 고통과 갈등은 사라지고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스쳐가는 바람의 향기, 그냥 놓여있는 작은 돌멩이 하나하나에 대한 느낌,
같이 오른 동료에 대한 복잡한 의미 같은 것들이
오직 산정에서 맞이하는 일출의 순간에만 느껴지는 성스러운 빛으로 변화되면서
잠시지만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그동안의 불순한 모든 것을 한순간에 날려버린다.
하지만 그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정상에 섰다는 것은 이제 등반의 절반을 끝냈다는 의미일 뿐이다.
체르코리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산 그림자의 너른 품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야크움막 옆에
BC가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체르코리의 옆구리를 횡단한 포터들이 이미 도착해서 캠프설치를 완료한 것이다.
한 시간 동안 내려가 BC에 오후 4시에 도착했다.
고소증상이 심해지면서 구토가 나고 잠도 오지 않았으며 두통은 더욱 심해졌다.
내일 등반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먹어두고 잠을 자야하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수분만 보충하고 텐트 안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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