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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배낭을 비우다

설악산 몽유도원도 릿지

by akwoo 2023. 10. 26.

산은 일상이 되지 않아서 좋다.

40년 넘게 산을 다녔지만 나는 여전히 산으로 떠날 준비를 하면 설레고 조금은 두렵다.

동료가 같이하는 클라이밍이든

솔로 하이킹이든 그 설렘과 작은 두려움이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

 

오랜만에 클럽산행에 동참했다.

20년 넘게 등반을 같이했던 동지들이라

등반 내내 유쾌하고 따뜻했다.

 

 

'몽유도원도 릿지' 들머리는

장수 3교에서 장수 2교 방향으로 50여 미터 내려가면 도로변에 있는 출입금지 표지판이다.

몽유도원도 릿지 어프로치 들머리.

 

 

 

제각각의 걸음으로 숲길을 걷는다.

초입에서 100여 미터 들어서자 잣나무인지 전나무인지 아직은 몸집이 크지 않은 침엽수림이 보였고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은 느긋한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숲은 군데군데 붉어서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비 탐방로라 왁자지껄한 사람들이 없어서 잠시지만 가을 숲을 오감으로 느끼며 걸었다.

들머리에서 500미터쯤 다다르자 미륵장군봉 입구라고 쓰인 막대표지판이 서 있고 바로 갈림길이다.

선명한 오른쪽 길을 따라 진행하다 다른 팀을 만나 물어보니 이 길이 아니라고 한다.

돌아 나와 다시 표지 막대에서 흐릿한 왼쪽 길로 들어가 30미터 정도 숲길을 따라 오르자 작은 암릉이 시작됐다.

오른쪽에 작은 암릉을 두고 그 아래로 10미터 정도 오르면 암릉으로 올라서는 흔적이 보인다.

이곳이 초입이다.

어떤 표시도 없다.

확신 없이 암릉을 따라 자유등반으로 오르다 보니 자일이 필요한 구간이 나왔다.

여전히 확신이 없었지만 모두 일단 장비를 착용하고 자일을 묶고 형진이가 선등을 섰다.

3미터 정도 오르자 바로 볼트 하나가 보였다.

잘 찾아온 것 같았다.

500미터 정도의 어프로치 숲길에서 만난 단풍

 

 

 

 

이 안내 막대에서 좌측으로난 희미한 길을 따라가야 몽유도원도 릿지를 만난다.

 

 

 

몽유도원도 릿지는 코오롱 등산학교 동문산악회에서 1992년 초등하고 2002년에 경원대 산악회가 개척했다.

전체적인 등반 난이도는 크게 어렵지 않은 초급 수준이고 최고 난이도는 5.7정도다.

하지만 7피치 같은 경우 홀드는 계단식으로 양호하지만 약간 오버행이라 방심할 수 없는 곳이다.

그 외에도 난이도는 낮지만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구간들이 많아서

자일을 설치하고 카라비너를 통과시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며 오르는 것이 좋다.

코스는 남쪽에서 정북 방향을 따라 나있다.

 

1, 2피치는 어렵지 않아서 쉽게 통과했다.

1봉 정상에 올라서자 조망이 확보되면서 거칠고 시원스러운 설악의 암봉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쪽은 거대한 바윗덩어리인 미륵장군봉이고

남쪽으로는 조금 멀리 삼형제봉과 주걱봉, 가리봉이

서쪽은 한계고성릉이 가을빛을 입고 당당하게 남북으로 뻗어있었다.

하늘은 푸르게 높았고 산은 붉고 노랗게 이뻤다.

어쩌다 찬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게 했지만

산줄기와 줄기 사이의 공간에는 가끔 새들이 그 바람을 따라 날개를 펴고 유영을 즐겼다.

~ 좋다

능선에 올라서며 모두 한 마디씩 한다.

좋다라는 짧은 감탄사에 모든 수식어가 담겨있다.

등반은 조금 더뎠다.

급하지 않게 즐기며 오르는 등반이다.

뒤따라온 팀이 5명이어서 먼저 가시라고 이미 설치한 우리 하강 자일을 내어줬다.

두 번째 피치를 등반 중이다

 

 

 

 

두 번째 피치 등반. 여유롭다

 

 

 

 

두 번째 피치 하강

 

 

 

3피치는 날 등을 따라 올라가는 25m55~60도 정도의 슬랩구간이다.

1봉에서 일부가 하강하는 동안 형진이가 선등으로 올라가

소나무에 확보를 하고 이어서 울트라 마라토너인 종일이가 올랐다.

나는 1봉에서 능선 오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름다운 등반선을 따라 오르는 모습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뷰포인트다.

선을 따라 연등하는 모습을 담다가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 하강하고

벽아래에서 클라이머의 오름짓을 담았다.

날 등을 따라 수직의 벽을 오르는 클라이머의 몸짓과

파란 하늘의 대비는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곡이라고 평가되는

영국의 록밴드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을 떠올리게 했다.

 

김 선생이 오르고 신규 회원이 따라 오르고 성훈이 기홍이가 연신 오른다.

그리고 기운이가 후미를 정리하며 올라온다.

세 번째 피치 선등 중인 형진

 

 

 

 

세 번째 피치. 선등 후 확보.

 

 

 

 

세 번째 피치 후등 중인 김 선생

 

 

 

 

 

 

 

 

세 번째 피치, 주마로 등반 중인 회장님.

 

 

 

3피치를 끝내고 20여 미터를 걸어가면 4피치 시작 지점이다.

4피치는 5.7 난이도에 경사 70도 정도의 10미터 크랙인데 우회로가 있다.

5피치는 4봉에서 5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으로 50미터 정도 걸어서 오르면 다시 시원스러운 조망이 나타난다.

5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세 개의 붉은 바위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중 하나가 시루떡을 쌓아놓은 것 같다고 하여 시루떡봉이라고 부른다.

왼쪽으로 조금 내려서서 시루봉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담았다.

4피치 크랙

 

 

 

 

4피치 크랙 등반

 

 

 

 

5피치 등반

 

 

 

 

5피치에서 조금 내려와 전망 좋은 곳에서 기념촬영. 뒤로 시루떡봉이 보인다.

 

 

등반 내내 피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려운 구간뿐 아니라 위험한 구간은 홀드나 스텐스가 좋아도 안전을 위해 되도록 자일을 깔면서 등반했다.

6피치는 10미터 하강 후 안부로 올라서서 잠깐 작은 벽을 오른 후 숲길과 크랙을 따라 올라간다.

거의 다 왔나 싶은데 붉은 벽이 나타났다.

7피치로 진입하는 길이다..

붉은 벽에서 스탠스와 홀드가 좋은 왼쪽으로 돌아 올라선 후 자일에 주마를 걸거나 로린락을 끼우고

크랙을 따라 연등으로 오른 후 숲길을 따라 올라간다.

6피치 하강

 

 

 

 

7피치로 진행 중. 쉬운 곳 이지만 자일을 설치했다.

 

 

 

7피치로 진행 중

 

왼쪽이 시루떡봉이다.

 

 

7피치로 진행 중

 

 

시루떡봉 앞에서 새로 나타난 암릉의 오른쪽으로 돌아 급경사진 곳을 오르고 나면 계단 형태로 쉬워 보이지만

막상 붙으면 약간 오버행진 구간과 마지막 왼쪽으로 흐르는 짧은 오버행의 크랙을 올라서면 벽 등반이 마무리된다.

형진이가 선등으로 올라 확보를 하고

내가 두 번째로 오르며 자일 하나를 가져가 픽스시켰다.

쉬운 듯 쉽지 않다.

7피치 하단 계단 형태의 바위. 약간 오버행이다.

 

 

 

 

7피치 등반

 

 

 

 

7피치 등반.

 

 

 

 

등반중 바라본 동쪽방향 풍경

 

 

 

벽등반 구간이 끝나고

릿지 정상부 암릉을 희미한 길을 따라 걸으면 안부로 내려선다.

정상부에 올라서면 시루떡봉이 보일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찾아서 올라가 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바로 하산하기로 했다.

안부에서 왼쪽은 쓰러진 고사목이 가로막고 있고 오른쪽 급사면이 하산로다.

미끄러운 사면이라 자일 내린 후 자일을 잡고 30여 미터 내려서자

곳부터는 화물차량 짐을 묶을 때 쓰는 넓은 밴드형 끈을 묶어둬서 그 끈을 잡고 계속 하강한다.

하강은 쉽지 않다.

낙엽이 쌓여 길이 잘 보이지 않아서 자칫하면 미끄러질 수 있었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낙석도 많아서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40여분 내려서자 드디어 계곡 아래에 닿았다.

석황사골이다.

하산길. 경사가 심하고 미끄럽다.

 

 

 

 

하산. 난이도5.11. ^^

 

 

 

급경사지 하산 완료 후

 

 

 

 

단풍이 곱게 든 석황사골

 

 

 

일행 중 일부는 계곡물에 족욕을 하고 일부는 바로 내려왔다.

잠깐 내려오자 처음 시작할 때 길을 헷갈렸던 곳이다.

 

금세 어둠이 내려앉았다.

막 저무는 햇빛에 붉은 단풍이 빛을 받아 석양처럼 더욱 붉어졌다.

앞서가는 종일이가 단풍이 너무 예쁘다고 연신 감탄한다.

숲은 어느덧 고요해졌고 미륵장군봉 등반가들도 거의 다 하강했는지 한 팀만 하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에 왔던 길로 빠르게 걸어 돌아 나왔다.

이미 어둠이 내려왔다.

주차장은 이제 한가해졌다.

 

 

오랜만에 참석했지만 다름없이 즐겁고 좋았다.

낡은 바위의 거친 촉감과

아찔한 고도.

긴장과

극복 뒤에 찾아오는 작은 여유.

아름답게 물든 단풍과

견딜만했던 차가운 바람.

그리고 같이 즐기고 같이 걱정해 주며

껄껄거리는 웃음.

 

잠시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들어

꿈을 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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