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7
츠가이케 자연원(1,829m) – 텐구바라(2,204m) – 노리쿠라다케(2,437m) – 하쿠바오이케(2,280m, 산장, 호수)점심 식사
– 고렌카산(2,769m) -미쿠니 사카이(2,751m) - 시로우마다케(2,932m) - 하쿠바 산장(2,832m)
총 거리 : 9.83km(오르내림 포함)
소요시간 : 7시간 30분(휴식 시간 포함)
오름 : 1,465m
내림 : 498m
총 걸음 : 19,400보
7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곤돌라 탑승역인 츠가이케역은 이미 100미터가 넘는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곤돌라와 로프웨이를 이용해 츠가이케 자연원(1,829m)에 도착해 잠깐 출발 전 정비를 하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곤돌라승강장에서 내려 로프웨이를 타러 가는 짧은 트레일에는 초록 잎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좀 더 높은 곳은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이미 잎을 다 떨군 나목들이
연병장에 모인 군인들처럼 모여있는데 그 나목의 집단에 측광이 비치자
가을과 겨울이 겹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몸이 조금 무거웠지만
다행히 비타민 같은 가을 숲이 피로를 몰아내고 있었다.
츠가이케 자연원 산장에 도착하자 단풍이 물든 숲 위로 우리가 가야 할 눈 쌓인 흰 능선이 보였다.
8시 40분에 키 넘는 산죽사이로 난 트레일을 따라 하이킹을 시작했다.
제각각의 속도로 걷는다.
급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느긋하게 가을산을 즐기며 걷고 싶었다.
웜업 되기 알맞은 경사의 길을 따라 1시간 20분을 걸어 습지인 텐구바라을 지나간다.
천천히 걸었는데 고도를 370미터나 올렸다.
국내 하이킹과 비슷한 속도다.
시작 30분도 되지 않아 길 옆에 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텐구바라의 관목과 큰 돌 아래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이제 좀 더 경사진 너덜지대를 올라간다.
트레일은 하이커들로 북적였다.
데일리 배낭을 멘 하이커와 박배낭을 맨 하이커들이 섞여있다.
고등학생쯤 보이는 아이들도 박배낭을 매고 오르는데
보기만 해도 즐겁고 활기가 넘친다.
경사진 너널 지대를 1시간 올라서자 너덜고원이 펼쳐졌다.
'하쿠바노리쿠라다케'(노리쿠라다케)다.
시원스럽게 펼쳐진 돌과 관목의 평원 뒤로는 눈 쌓인 설산이 고래등처럼 이어졌다.
걸음이 빠른 일행들이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 능선부터는 돌탑과 관목 그리고 바위마다 다양한 형태의 상고대가 피어
하이킹 내내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간단하게 기념사진 몇 컷 담고 호수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먼저 출발했다.
너덜과 관목지대의 불편한 길을 따라 내려선 후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데
기시감이 들었다.
아!
딱 1년 전 쿰부히말라야 고교 트레킹 때 고교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던 기억이
무의식 속에서 소환된 것이다.
트레킹 중 고산호수를 만나 그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낭만 가득인데
산과 호수, 물과 바람이 그려진 수묵화에
채색된 빛이 더해진 수묵 담채화 속을 걷는 것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경계지에 든 느낌이다.
이런 환상적인 감정은 아마 오래전 샤모니 락블랑 호수와
백두산 천지의 가장자리를 걸으며 느꼈던
아름다운 기억 때문에 기인한 것 같기도 하다.
호수를 돌아 도착한 곳은 붉은색을 칠한 하쿠바오이케 산장이다.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었더니 30분이나 소요됐다.
산장 안에 들어가 아침에 준비해 온 주먹밥과 산장에서 시킨 컵라면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입맛이 없었는데 굶을 수는 없어서 억지로 조금 먹었다.
산장에서 상고대가 핀 관목지대를 가로지르는 완만한 트레일을 따라 오르면 마루금이다.
여기부터는 적설량이 현저히 많아졌다.
가야 할 길은 이제 온전히 눈으로 덮여있었다.
마루금으로 올라서자
북알프스의 눈 덮인 산들이 조망되고
산아래로 작은 도시들도 보였다.
파랗던 하늘은 구름이 많아졌고
마루금을 따라 꿈틀거리며 이어지는 길은
요철처럼 울퉁불퉁 오르내림을 무한반복하며 아득히 이어졌다.
고도가 높아지고 시간이 기울면서
바람이 조금씩 거세졌고
구름은 해일처럼 밀려와 한순간에 가야 할 길을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했다.
전형적인 고산지대의 날씨 루틴이다.
오후 2시가 넘자 바람이 갈수록 거세졌다.
구름도 계속 밀려왔다.
옷깃을 여미고 행군하듯 걸어간다.
2시 10분에 고렌케산 정상에 도착했다.
하쿠바오이케산장에서 2시간 정도 걸렸다.
정상 컷을 담아준 후 바로 출발해서 걷는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다.
바람은 초속 16미터~7미터까지 강하게 불었다.
세찬 바람에 몇 차례 몸이 휘청거렸다.
윈드블록 위로 다운재킷을 덧입었다.
재킷의 깃이 계속 얼굴을 때렸다.
온도보다 바람이 사람의 의지를 훨씬 위축시킨다.
모두 입을 다물고 옷깃을 목 위로 여민 체 수행자처럼 묵묵히 앞을 향해 걷는다.
마지막 시로우마타케 정상으로 오르는 구간은 경사가 심해졌다.
불규칙한 계단형태의 암릉구간이다.
아이젠을 차지 않고 왔던 일행이 아이젠을 꺼내서 찼다.
나는 아이젠이 없어서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어려운 구간은 아니었다.
정상은 구름 속에서 만났다.
고렌케산 정상에서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정상에서 (주)마운틴 트랙 최대표가 마운틴 티비 피디와 인터뷰를 했다.
워낙 다양한 트레킹을 해왔고 방송과의 협업도 많았던 친구라
하이킹 내용과 느낌에 대한 설명이 자연스럽다.
갑작스러운 기온변화와 눈보라 속에서 정상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조금 힘이 들긴 했지만
가을에 만나는 겨울산은 그 거침과 모노컬러의 묵직함이 더해지면서
환상적인 그림을 만나게 해 줬다.
여행이 늘 그렇듯
산으로의 여행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을 만나면서 훨씬 더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
정상에서 산장까지는 10분 만에 내려섰다.
오늘의 여행이 끝났다.
산장 안의 난로가 반가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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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바산장은 시로우마다케 정상 바로 아래에 있다.
안에는 숙소와 매점, 식당,
자판기와 도서, 티비가 있는 거실 형태의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식사 후 담소를 나누거나 차나 술을 마실 수 있다.
버너를 켜서 커피를 내려 마실수도 있다.
매점에서는 가스, 물과 음료, 술과 과자, 기념품도 판다.
20년 전쯤 사용했을 것 같은 아이젠도 팔았다.
일기예보 등 하이킹 정보가 보드에 적혀있다.
건물 옆에 텐트를 칠 수도 있다.(예약)
산장들은 대부분 개인이 운영하며
겨울철에는 운영하지 않는다.
북알프스 시로우마다케 종주(시로우마다케-샤쿠시다케-야리가다케)-2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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