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 8일
하쿠바산장(2,832m) - 샤쿠시다케(2,812m) - 야리가다케(2,903m) - 텐구산장(2,720m, 점심식사)
- 불귀 2봉 남봉 - 카라마츠다케(2,696m) - 카라마츠다케 산장
총 거리 : 10.56km
소요시간 : 9시간 52분(2시간 40분 휴식 포함)
오름 : 1,177m
내림 :1,384m
총 걸음 : 21,000보
날이 흐렸다.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도시락을 챙겨 7시가 채 안 돼서 출발했다.
산장에서 20년 전에나 쓰던 4발 아이젠이 있어서 하나 구입했다.
산장앞에서 가야 할 길을 바라보니
정남방향으로 샤쿠시다케와 야리게다케가 알프스의 설산처럼 우뚝 솟아있다.
가야 할 길은 눈 위로 선명했고 이미 출발한 몇몇 하이커들이 보였다.
시작은 내리막이다.
우리 팀도 출발했다.
능선을 따라 줄지어 걷는 하이커의 모습을 담고 출발하기 위하여
나는 10분 후에 출발했다.
날이 흐려서 온통 하얀 설산마저 무겁게 느껴졌다.
날씨의 상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주어진 상황에서 좋은 그림을 찾아내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앞 언덕에서 옷을 벗기 위해 멈춰 있는 동안 일행들과 합류했다.
오늘 일정은 10여 개가 넘는 봉우리를 계속 업다운하며 걸어야 한다.
마루금을 따라 가지만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다.
어젯밤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음식도 거의 섭취하지 못했다.
에너지 조달은 행동식으로 해야 한다.
그래도 컨디션이 아주 나쁘지는 않아서 걸을만했다.
샤쿠시다케 능선을 오르는 모습을 담기 위해
일행들이 안부로 내려섰다 전위봉 같은 언덕의 중간지대까지 올라설 동안
안부로 내려서지 않고 기다렸다.
모노 컬러가 된 산을 하이커들이 줄을 지어 오르는 모습은
묵직한 감동을 준다.
멀리서 바라보면 작은 점들이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인다.
풀 숏과 디테일 숏을 찍고
빛이나 구름이 한가닥 연꼬리처럼 지나가기를 기다려 볼까 하다
이미 거리가 많이 벌어진 일행들을 따라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포기하고 출발했다.
전위봉 같은 언덕 위로 올라선 후 샤쿠시타케 정상으로 향하는 왼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오르다
정상을 패스하고 정상 170미터 아래(표고차 60미터)에서 바로 횡단했다.
이 길을 걷는 팀은 우리 일행과 일본인 두 명뿐이다.
하쿠바 산장에서 출발했던 여러 팀은 중간 어디선가 하산하는 길이 있었는지 대부분 모두 사라지고
박배낭을 맨 일본인 두 명만 우리 일행과 같이 걷고 있었다.
샤쿠시다케 정상을 거쳐 가기에는 러셀이 되어 있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횡단하는 길을 따라갔다.
500여 미터를 횡단한 후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에서 야리가다케 정상까지는 고도 200미터 넘게 올려야 한다.
지금까지와 달리 경사가 조금 심해졌다.
길은 지그제그로 이어진다.
특별한 테크닉이 필요한 경사는 아니지만 체력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구간이다.
일본 북알프스 등반이 쉽지 않다는 말은 많이 들었었다.
우리나라 산악인들이 사고로 언론에 보도되곤 해서
국내산처럼 아주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
9월이 되자 갑자기 1년이 벌써 지나나 싶어 허무했다.
그냥 쉽게 갈만한 곳을 찾다가 단풍구경이나 하려고 오게 됐는데 막상 와보니 한겨울이다.
동계훈련을 제대로 하는 느낌이다.
만만한 산은 없다.
일본 북알프스도 지금처럼 릿지(능선)로 붙으면 체력만 있으면 되지만
벽으로 붙으면 유럽 알프스 못지않게 난이도가 있어 보여서
히말라야 등반 훈련지로 괜찮아 보였다.
다만 고소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긴 하다.
산은 교만한 마음으로 오게 되면 여지없이 회초리를 든다.
계속 오르막을 오르자 허벅지에 텐션이 왔다.
경사가 심한 구간을 힘들게 올라서자 정상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이다.
능선에는 일행들은 각자 흩어져서 제각각의 속도로 걷고 있었다.
선두는 한참이나 앞서가고 있다.
워킹산행을 많이 하는 분들이 역시 빠르게 걷는다.
정상표지막대에 도착하자 다들 기념촬영 중이다.
시계를 보니 9시 20분이다.
하쿠바 산장에서 2시간 20분 걸렸다.
정상 표지막대는 상고대가 잔뜩 붙어 글씨를 알아볼 수 없었다.
진행 방향으로 두 개의 봉우리를 지나 산장이 하나 보였다.
해발 2,720미터에 있는 텐구산장이다.
텐구산장이 오늘 가야 할 거리의 딲 절반 지점이라고 한다.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다시 출발해서 내리막을 걷는다.
야리가다케 정상에서 보였던 산장은 가까워 보였는데 1시간이나 걸려 10시 20 도착했다.
산장은 문이 닫혀있었다.
시즌아웃이다.
할 수 없이 산장처마 아래 짐을 풀고
하쿠바산장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이제 우리 팀뿐이다.
중간에 갈림길에서 일본인은 내려간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10시 50분에 출발했다.
오르막으로 시작한다.
먹는 시늉만 했는데 그래도 몸이 더 무거워졌다.
다시 업다운의 반복이다.
힘든 오르막을 올라 서자 설원지대가 펼쳐졌다.
설원지대에는 수만 마리의 뇌조(천둥새 - 북알프스의 마스코트)들이
날개를 접고 고개를 숙인 채 추위와 눈보라를 피하려는 듯 엎드려 있는 것 같았다.
온도와 습도와 바람이 빚어낸 신비로운 상고대다.
이 평원지역은 관목도 없는 초지인데 그 초원의 풀포기마다 상고대가 피어
마치 새들이 날개를 접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 같은 장관을 연출했다.
상고대는고도 2천 미터 정도부터 보이기 시작했는데
풀과 나무와 관목지대, 너덜지대, 돌과 바위, 막대 표지판 등에
제각각 형이상학적 형태로 피어 있어서
자연이라는 작가가 그린 추상화 갤러리에 온 것 같았다.
내게는 어제와 오늘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상고대를 감상하며 걷는 것은
이번 하이킹이 주는 깜짝 보너스였다.
사방이 노출된 마루금을 따라 걷는데도 다행히 어제와 달리 바람이 약해서 어려움은 없었다.
평원지대를 지나자 내리막이다.
대부분 능선을 따라 걷지만 두 세 차례는 능선 아래로 횡단하기도 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1km 정도 내려서자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지는
급경사 다운 구간이다.
러셀이 되어있지 않아
눈 속의 상태를 알 수 없는 구간이라 조심스러웠다.
마운틴 트랙 최대표가 앞에 서서 길을 냈다.
모두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간다.
길은 눈 덮인 자갈길이다.
경사는 거칠고 난폭해졌다.
조금 완만해지는 듯하다가 쇠사슬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구간이 나왔다.
눈이 굳어 있거나 자갈길이 아니면 아이젠웍으로 내려설 수도 있지만
이곳은 그럴 수가 없는 곳이었다.
조심조심 내려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급경사를 700미터 정도 내려와 어렵게 안부에 도착했다.
고도 300미터를 낮췄다.
고도가 2,400미터 대로 떨어지자 이제 관목지대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됐다.
어제 구간은 요철형태의 능선을 업다운하며 은근하게 최고봉을 오르는 거라면
오늘은 이 빠진 톱날을 거꾸로 세워둔 것 같은 급경사를 오르내렸다.
어제보다 훨씬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구간이다.
이제 길은 가라마츠다케를 향한다.
마지막 봉우리다.
바로 올라가지 않고 전위봉 몇 개를 오르내린 후 능선을 따라 올라야 한다.
첫 번째 전위봉인 '불귀 2봉'은 두개의 봉우리다.
첫번째 봉우리를 직선으로 오르다 좌측으로 반바퀴 돌며 오른 다음
바로 능선으로 올라 남봉정상으로 오른다.
그곳이 '불귀 2봉 남봉'이다.
난이도 5.4급의 암릉구간이다.
거리는 500미터 정도, 고도는 160미터 정도를 올린다.
4족 보행을 해야 한다.
홀드는 많았지만
암릉에는 눈이 얼어붙어 있어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다행히 곳곳에 픽스된 쇠사슬을 잡고 올라간다.
실수하면 안 되는 곳이다.
모두 스틱을 접고 손과 발을 사용해서 올라간다.
나도 목에 걸고 왔던 카메라를 배낭에 넣었다.
모두 생각보다 잘 오른다.
불귀 2봉 남봉에 도착하자 대퇴사두근에 펌핑이 느껴졌다.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곳이다.
3시가 넘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그만큼 업다운이 심했다는 방증이다.
불귀 2봉을 오르는 영상
불귀 2봉 남봉에서 잠깐 쉬면서 포토 타임을 갖고 다시 출발했다.
이제 가라마츠다케는 가까이 보였다.
잠깐 내려가다 다시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그래도 여기부터는 업다운 편차가 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다들 말없이 걷는다.
잘 걷던 못 걷던 모두 지쳐있다.
가라마츠다케 정상에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상고대는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하다.
스마트폰으로 상고대 몇 컷을 담고
마지막 힘을 짜내서 걷는다.
드디어 일정 중 마지막 정상인 카라마츠다케 정상이다.
시간을 보니 4시 10분이다.
불귀 2봉 남봉에서 50분이 걸렸다.
정상에는
우리 팀 외에도 10여 명의 하이커들이 셀카를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우리도 각자 기념사진을 찍고 다른 하이커에게 부탁해서 단체사진도 찍었다.
드디어 봉우리는 다 끝난 것이다.
20여분 머물며 즐기다 바로 앞에 보이는 카라마츠다케 산장으로 내려간다.
바로 앞인데도 20분 걸렸다.
금세 안개가 밀려오더니 안개비가 내린다.
그래도 상관없다.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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