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몸이 무거웠다
11월 운장산 때도 쉽지 않았었다
들머리는 장수읍에서 진안군 백운면으로 넘어가는 지방도 742호 선상에 있는 서구이재다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경사가 조금 있는 등산로를 따라 250여미터를 거의 직선으로 오르면
팔공산과 오계치를 잇는 마루금이다
시작부터 7분정도 경사지를 올라야 해서
이 이정표가 있는 마루금에 도착하면
확실한 웜업이 된다
이후부터는 마루금을 따라 완만하게 고도를 올리며 북에서 남쪽으로 걷는 길이다
길 옆은 대부분 조릿대가 자라고 키 큰 나무로 조망권이 완전하지 않았지만
중간중간 좌우 조망권이 확보되는 곳이 몇 곳 있어서 동서방향을 조망할 수 있다
서쪽과 서북방향은 임실군과 진안군이고 동쪽은 장수읍과 장안산, 영취산 백운산을 조망할 수 있다
느릿하게 걷다 보니 1시간 정도 걸리는 2.5km거리를 1시간 20분이 걸렸다
헬기장에 도착하니 일행들이 벌써 텐트를 거의 다 치고 있었다
헬기장은 바람에 노출된 곳이지만
동쪽과 남쪽이 조망권이 확보되고 바닥도 평편해서 텐트사이트로 적합해 보였다
짐 정리를 마치고 해가 곧 지려고 해서 3분 거리의 팔공산 정산으로 향했다
정상은 안타깝게도 송신 시설들과 관리사, 전선들이 있다 보니 상당히 지저분해 보인다
그래도 옆에 공간들이 있어서 서쪽 방향의 조망이 볼만했다
지리산 능선은 가로지르는 전선으로 시선이 불편했지만
먼산주름은 서쪽 방향이 오히려 좋았고
멀리 무등산이 선명하게 솟아 올라 상직적으로 보였다
낙조사진을 몇 컷 담고 헬기장으로 돌아왔다
금세 어두워졌고 춥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람이 거의 없다는 것.
먼저 커피를 내렸다
텐트 안이 훈훈해지고 커피 향이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조금 열어둔 텐트 창 밖으로
이른 별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 별빛이 우리 눈에 보이기까지 수십억 광년의 시간이 흘렀음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까?
어쩌면 저 별들 중 일부는 이미 소멸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의 디너는 고가의 소고기 구이다
동료가 백수 기념 첫 산행이라고 장수읍 소고기 명품관에서 고가의 소고기를 샀다
(이곳 소고기는 꽤 비싸다)
소고기를 굽고 복분자주로 반주를 했다
맛나다
과자로 주전부리를 했지만 가격에 걸맞은 맛이다
겨울밤
그 길고 긴 밤의
대화 주제는 음악이다
특히 요즘 시작한 싱어게인 시즌2의 음악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듣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평을 하면서
밤이 깊어간다
주변에 다른 백패커들이 없어서
수다를 떨어도
음악을 크게 들어도 괜찮다
두어 번 밖으로 나와 별도 보고
볼일도 보면서
무한공간의 자유를 느껴본다
초저녁부터 카시오페아 자리는 북쪽에 선명하고
북두칠성은 미완성체로 북동쪽 아래서 올라오고 있었다
10시가 채 못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몇 차례 깨기는 했지만 잘 잤다
6시 조금 넘어 일어났다
아직은 어둡다
뒤척이며 날이 밝기를 기다리다 7시가 다되어 텐트에서 나왔다
운해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역시 건조한 날씨 때문에 운해는 없다
대신 높고 낮은 산들의 마루 사이로 엷은 안개가 산의 실루엣과 어우러져
분명한 음영으로 입체적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자
순식간에 주변의 색이 변했다
산의 주름 사이에 머무르던 엷은 안개는 붉게 물들어
들불이 퍼지듯 골과 골 사이로 흘러가는 듯했고
하늘은 마젠타 색이 사라지고
황금빛으로 변했다
빛이 대기를 통과하면서 만들어내는 이 순간의 신비는
높은 산에서만 만날 수 있으니
오르는 수고에 대한 자연이 내리는 강렬한 포상이다
태양이 높아지면서
색이 조금씩 벗겨지고
풍경도 다른 모습이 되어간다
이 모든 변화는 빛이 주관한다
빛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빛이 있어서 사물을 보고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17세기 말까지만 해도 과학자들도 빛이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 빛이 1초 동안 30만 km, 곧 지구 7바퀴 반을 달린다는 사실을 지금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빛의 정체를 완벽하게 밝혀낸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이다
빛이란 게 알고 보니 놀랍게도 전자기파(전자파)의 일종이었다
전자레인지를 돌리고 휴대폰을 울리게 하는 것이 바로 전자기파다
전기와 자기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이들이 만들어내는 전자기마당의 출렁임,
즉 전자기파를 우리는 빛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전자기파는 파장이 아주 짧은 것부터 엄청 긴 것까지 넓게 분포해 있는데
우리가 빛이라 부르는 가시광선은 그중 좁은 영역의 파장을 가진 전자기파다
태양광은 희게 보여 백색광이라고 하지만 실은 다양한 색을 지닌 빛의 집합체다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수학자인 아이작 뉴턴은 햇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여러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빛의 띠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띠를 태양광 스펙트럼이라 하고
태양광 스펙트럼은 무지개처럼 빨주노초파남보 순으로 그러데이션을 이룬다
이 스펙트럼에 보이는 여러 색깔의 차이는 바로 파장의 길고 짧음의 차이다
빨강이 더 길고 뒤로 갈수록 더 짧아진다
보이는 색이 같아도 빛의 성분이 같은 것은 아니다
또 가시광선의 색은 파장만으로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형광등이나 LED조명은 색의 성분이 다르다
조명의 성분이 다르면 사물의 색 관점이 변할 수 있다
옷의 색이 실내와 실외에서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빛 잔치는 한동안 계속됐다
10시를 넘어서까지 3시간 이상을 조금씩 변해가면서
다양한 색과 느낌을 만들었다
바로 위 사진과 아래 사진이 그중 최고의 순간이다
물론 어떤 순간이 최고의 순간인가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위 사진은 좌측광으로 비추는 붉은빛이
중간에 산과 나무를 만나 그 사이로 통과하면서
수 없이 많은 직선을 옆으로 그어 강렬한 빛을 쏘아내는 것 같고
아래 사진은 지리 주능을 다 담기 위해(표준 렌즈로 다 담기지만)
2컷을 이어 붙인 파노라마 사진인데 다양한 색상이
담겨 있는 순간이다
해가 더 높아지자
실루엣으로 보였던 산들의 몸집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산의 마루와 마루로 이어지던 줄기들 사이로
자유롭게 지릉들이 퍼져나가고
다시 그 지릉에서 더 작은 줄기들이 뻗어나가며
수 없이 많은 골을 만든다
그 골에서 흐르던 작은 물줄기들이 어느 지점에서 합쳐지고
다시 합쳐진 물줄기들이 더 크게 모여 강을 이룬다
그 물줄기들을 따라 마을이 생기고
도시가 생겨난다
사진 촬영은 8시 30분쯤 마쳤다
온도는 영하였지만 바람이 거의 없어서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산정에는 우리 일행뿐이다
촬영 중에 2명 정도가 다녀갔다
볕이 좋아서
아침 식사는 밖에서 준비했다
늘 그렇듯 빵과 사과와 커피면 충분하다
산정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을 굽어보며
마시는 커피는
그 어떤 고급 커피보다 좋다
느긋하게
아침을 즐기고
짐을 정리하고 주변을 청소한 다음
11 넘어서 하산을 시작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12시 20분이다
점심은
어제 먹었던 장수한우 명품관이다
박 선생이 밥을 샀다
두 분 모두 감사~
ps: 빛에 관한 내용은 이광석의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과 '빛과 색이 사이언스'를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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