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0-13 트레킹 5일 차 -
마체르모(09:40) - (14:40)고교
마체르모 고도 : 4,470m
고교 고도 : 4,790m
거리 : 7.5km
걸음 : 12,100보
소요시간 : 5시간
날씨 : 맑음
혈중 산소 : 75%(오전 5시 42분)
일어나자마자 산소 포화도를 측정했다.
어제보다 10% 정도 줄었다.
고도를 생각하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다.
고도가 높아졌으니 몸의 변화를 잘 체크해야 한다.
그동안 10여 차례 고산 등반에서 한 번도 약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트레킹임에도 소화제와 두통약을 밤마다 먹었다.
고소 증상이 심하게 오지는 않았지만
소화가 안되고 두통이 약간 있어서
고생하느니 약을 쓰기로 했다.
약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나서 먹고 나면 소화도 잘 됐고 두통도 없어졌다.
카메라를 들고 롯지 마당에 나와 뒤쪽을 바라보니
케조리 정상 부부분이 붉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모르겐로트다.
케조리 정상은 바위로 만들어진 피라미드 형태로
설산의 모르겐로트 보다는 선명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졌다.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이신 70대 중반의 선배님이 고소 증상으로
심장에 이상이 생겨 밤새 고생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친구분이 비상시 쓰라고 준 심장약을 드시고
위험한 고비는 넘기신 것 같다고 하신다.
더 이상 트레킹을 진행하기는 어려워서 응급 헬기를 불렀다.
일단 카트만두로 가서 진단을 받아 보고
국내로 들어가시기로 하셨다.
(다행히 병원에서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나머지 일정을 여행하시다 카트만두에서 우리와 다시 합류하셨다)
당초 7시 출발이었는데 급하지 않아서
헬기 오기를 기다리다 9시 40분에 출발했다.
트레킹 시작해서 처음으로 날이 맑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얼마 만에 보는지 반갑다.
오버 트라우져, 판초우의, 윈드재킷, 배낭 커버를 다 벗어 버리니
한결 몸짓이 편해졌다.
어젯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서 아침에 롯지 앞이 얼어 있었는데
10시 가까이 되자 햇볕이 좋아 추운 느낌은 없었다.
롯지에서 완만한 사선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간다.
느린 걸음으로 올라가며 뒤돌아본 마체르모는
어제 들어올 때와 달리 눈부시게 선명하다.
네모로 구획 지어진 목초지는 돌담이 경계가 되고
그 돌담 안에 주택이나 롯지가 있다.
주택의 지붕은 그린 계열이 많았지만 로즈레드 컬러를 한 롯지들도 보였다.
산사면의 딥 브라운, 목초지의 그린, 레드 컬러의 지붕과 블루 스카이, 흰구름과 설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컬러들이
그냥 그곳 본래의 컬러처럼 느껴졌다.
15분을 걸어 고개에 올라섰다.
한순간에 다른 세상이다.
협곡 안에서 보았던 풍경과는 완전히 달라진 풍경이다.
조망이 확보되면서
남남동 방향의 캉테가와 탐세루크의 날카롭고 위협적인 능선과 정상이 시원스럽게 보였다.
우리가 가야 할 북쪽에는 멀리 8,000m가 넘는 초오유가
동쪽에는 테보체와 촐라체가 나란히 그 위용을 뽐내고 있고
서쪽 방향에는 뾰족한 바위 덩어리인 테조리가 막 구름 옷을 벗어던지고 있었다.
협곡은 깊었고
갈색의 산자락 위에는 신설이 내려있다.
협곡 건너편 산줄기에는 누군가 선을 그어놓은 듯 위태로운 길 하나가
꿈틀거리며 동서로 길게 이어졌다.
그 길을 따라 아름다운 목장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6,000m급 설산 위에는 날개 달린 구름들이
꼬리깃을 흔들며 날아간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쿰부 히말라야는
아이맥스관에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하는 것 같았다.
180도 파노라마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환상적인 뷰포인트다.
아침 사진은 여기 올라와서 찍었어야 했다.
10분이면 올라오는 거린데 너무 아쉽다.
(처음으로 날이 좋아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고교 피크에서 바라본 풍경보다 더 좋았다)
아름다운 풍경만 줄 수 있는 위로를
벅차게 받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 방향을 바라봐도
'왜? 이곳인가'에 대한 답이 분명하게 쓰여있는 것 같았다.
내가 고교 트레킹을 기획한 것은 호수 때문이다.
고교 호수에 텐트를 치고 이틀쯤 머물며 산책을 하고
고교 피크 정상에 서 하룻밤 머물며 별과 바람과 가까워지고
아벤트로트와 모르겐로트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혼자 하거나 파트너 한 명 정도와 하는 게 맞다.
여러 명이 일정을 맞추려다 보니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으로 날 유인한 호수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 언덕에서 만난 풍경이
고교 트레킹에 지불한 비용을 되돌려 주고 있었다.
걷다 보면 생각이 조금씩 줄어들다 어느 순간 사라진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다리는 무거워지지만
머리는 단순해지고 가벼워진다.
히말라야가 주는 단순한 컬러만큼
뇌가 간결해지는 것이다.
한 시간 조금 넘어서자 풍경이 다시 바뀌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컬러가 화이트와 블루 그리고 딥 브라운으로 단순해졌다.
길은 오르 내림이 거의 없는 듯 두드 코시 강 상류를 쫓아 은근하게 올라간다.
산사면에 검은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에
작은 마을을 하나 지났다.
마체르모를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드디어 고교의 첫 번째 호수를 만났다.
작았다.
빛이 들자
에메랄드 컬러의 물결이 반짝거렸고
저마다의 소원을 담은 케른들이 곳곳에 쌓여있다.
흰돌에 검은색이 섞인 것인지 검은 돌에 흰색이 섞인 것이지 구분이 가지 않는
크고 작은 돌과 바위들이 가득한 길 옆에 호수가 있다.
호수가 없다면 생명체가 살지 않는 어느 행성에
갑자기 불시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좋다.
이 황량한 날 것의 세상이.
이런 것을 보고자 화려한 문명의 세상에서 떠나오지 않았던가.
날이 금방 추워졌다.
비니를 꺼내 쓰고
패딩도 꺼내 입었다.
점심시간을 넘겼는데 음식 섭취를 하지 못해서 더 춥게 느껴졌다.
조금 서둘러 걸어가는데
키친 보이가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마중 나왔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잠시 앉아서 따뜻한 물을 마시고 행동식을 섭취하자 한결 좋아졌다.
30분을 걸어 두 번째 호수를 지나고 다시 30분을 더 걷자
가장 큰 고교 호수다.
호수 가장자리로 난 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자 고교 마을이다.
고교 마을은 10 여체가 넘는 건물들이 모여있다.
건물들은 대부분 롯지용 이어서 규모가 조금 큰 편이다.
드디어 도착했다.
첫 번째 호수에서 2시간이 걸렸다.
사진도 찍고 휴식하고 여유있게 걸어온 시간이다.
롯지로 들어가 짐을 풀고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날이 쌀쌀해서 난로를 피워주라고 했더니 5시 이후에 피운다고 한다.
비용을 지불하고 난로를 조금 일찍 피웠다.
우리뿐인 레스토랑의 난로가에 모여 커피를 내려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은
오늘 걸어온 길처럼 환상적인 시간이다.
마체르모 언덕에서 바라본 설산 파노라마.
딥 브라운 컬러로 길게 이어지는 황량한 트레일.
거친 바위와 돌이 만들어 내는 날 것 같은 환경.
탁한 삶을 필터링해주는 것 같던 에메랄드 컬러의 호수.
걷는 내내 행복했다.
같이한 동료들은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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