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운장산을 가려고 했는데 금요일에 과한 운동으로 근육통이 심해서
월요일 오후에
오르는 시간이 짧은 대둔산으로 방향을 바꿨다.
태고사 쪽은 겨울철에 길이 얼어서 진입이 어려운 걸 알기에 케이블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3시에 케이블카를 탑승해 6분 만에 상부 정류장에 도착했다.
정류장을 빠져나오자 아래쪽과 달리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었다.
바로 출발했다.
배낭은 무겁다.
겨울 백패킹이라 침낭도 동계용을 써야하고
방한복도 상하의 다 준비해야해서 미스터리렌치 대형배낭에 짐을 패킹했다.
이 배낭은 오래전에 나온 배낭이라 빈 배낭 무게도 3kg 정도다.
물은 겨울이라 2리터 만 준비했다.
총무게는 25kg.
정류장을 나서면 처음부터 급한 계단으로 시작되는데 무게가 버겁게 느껴졌다.
계단마다 눈이 굳은 체 붙어 있어서 걸음마다 조심스러웠다.
아이젠을 가져왔지만 차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지만
아이젠을 차고 걸을 때는 아이젠 발톱에
한쪽 바지에 걸리거나 눈이 녹은 곳의 틈 같은 곳에 끼어 넘어지게 되면
심각한 부상을 당할 수 있어서 위험한 빙판이 아니고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스틱을 활용해서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마천대에서부터 내려오는 금강계곡은
나무마다 빈 가지에 붙어 있는 얼음들이 역광을 받아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점멸하는 작은 전구 같이 반짝거렸다.
데크와 돌로 만들어진 계단이 이어지는 이 구간은
경사가 급해서 짧은 거리인데도 땀을 많이 흘렸다..
계단이 긴 곳에서는 스틱에 기대 잠깐씩 쉬면서 올라갔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간간이 등산객들이 마천대에서 내려왔다.
40분을 올라 마천대와 낙조산장 방향으로 갈라지는 능선 안부에 도착했다.
오늘 박지는 칠성봉에서 정남방향으로 직선거리 100m에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 봉우리다.
안부에서 낙조산장 방향으로 150m 정도 진행하다 마천대-용문골 삼거리 300m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샛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
바위 턱처럼 능선에서 동남 방향으로 조금 튀어나온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장군봉뿐 아니라 동쪽의 금산과 남쪽의 운주를 조망하며 사진을 담을 수 있는 사진 포인트다.
15미터 정도 위쪽에 예전에 몇 번 텐트를 쳤던 좋은 사이트가 있는데
오늘은 평일, 그것도 월요일이어서 이곳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1인용 텐트 겨우 한 동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지만 조망은 뛰어나고
북풍을 막아 주는 곳이어서 겨울철에는 괜찮은 사이트다.
조금 비스듬한 곳인데 눈이 다져져 있어서 텐트를 칠만했다.
팩 다운을 해야 하는데 한 곳만 팩이 박히고 나머지는 팩이 들어가지 않았다.
보물찾기하듯 겨우 3개의 돌을 찾아서
텐트 끈에 팩을 가로로 끼우고 그 위에 돌을 올려서 고정했다.
절벽 쪽으로 향한 한쪽 문은 작은 돌을 묶어 텐트 문에 달린 끈과 연결시킨 후 절벽 아래로 내려뜨렸다.
짐을 풀어 정리하고 배낭은 헤드만 분리해서 텐트 안에 넣고 밖에 두었다.
곧 해가 질 것이어서 텐트 옆 눈 쌓인 작은 공간에 의자와 탁자를 펴고 커피를 한잔 내렸다.
온도가 떨어지고 있어서 패딩을 입고 마천대 뒤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인증사진도 몇 컷 찍었는데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시렸다.
핫팩을 하나 주머니에 넣어두고 수시로 만지작거리며 손을 데웠어도 손마디 두 개 정도가 계속 아렸다.
하늘이 붉어지더니 금세 어두워졌고 해가 진 하늘에 초승달이 불쑥 떠올랐다.
초승달이라 빛이 약해 별이 많이 보였다.
텐트 안에 들어앉아 밖 경사면 눈 위에 미니 탁자를 수평으로 설치하는 신공을 발휘한 뒤에
스토브를 켜고 가져온 닭가슴살 스테이크를 구웠다.
스테이크를 다 굽고 물을 끓인 후 햇반과 황태탕 소스를 넣어 국밥을 만들었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적절한 저녁식사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겨울에 듣기 좋은 재즈
(과일 이름 닮은 사이트에 겨울에 듣기 좋은 째즈를 검색하면 100곡을 이어서 들을 수 있다)를 들으며
스테이크와 뜨거운 국밥을 먹었다.
따뜻한 국물이 몸에 들어가자 추위가 조금 가셨다.
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정리하려고 하는데 화장지를 가져오지 않았다.
큰 실수다.
(화장지가 없으면 여러모로 난감하다.)
다행히 코인 물티슈를 몇 개 가져온게 있어서
물에 적셔 화장지 대용으로 썼다.
겨울은 해는 짧고 밤은 길다.
추워서 밖에는 나가지 못하고
텐트 안에서 소셜미디어에 포스팅하고
다른 사람들의 소식을 들춰보며 시간을 보냈다.
밖을 나와 보니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산 아래는 불빛이 총총했다.
대둔산은 1,000m가 되지 않는 낮은 산이다.
그래서 주변마을과 대전시, 금산읍의 불빛들이 가까이 밝게 보인다.
별 사진 찍기에는 부적합한 곳이다.
기록용으로 텐트 사진만 두 컷 찍었다.
바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낮은 기온보다 바람이 훨씬 사람을 위축시킨다.
그래서 바람이 심한 날은 밖에 나올 엄두도 못 낸다.
마천대에서 낙조대까지 1km 남짓의 능선에 사람은 없다.
나 혼자다.
밤 11시면 질 초승달과
수백에서 수억 광년 전의 별빛이 같이할 뿐이다.
월요일 백패킹은
소란이 없는 고요의 시공간으로의 유배다.
벗과 함께하는 산도 좋지만 이렇게 고립된 산도 좋다.
잠시 밤하늘과 어울리다 텐트에 들어왔다.
침낭에 들어가 이른 잠을 청한다.
머리까지 침낭을 뒤집어쓰고 잠깐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깊게 잠들지 못하고 몇 차례 깨다 자다를 반복하다
두 시 반쯤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북두칠성이 중천에 떠 있다.
밤별들이 초저녁보다 훨씬 선명해 보였다.
여전히 바람은 없고 날도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밤이 깊어서 산 아래 마을도 더 어두워졌다.
습도가 100%로 예보되어 있었는데 운해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들어와 잠을 청하는데 뒤척이기만 하지 잠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지나자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불빛이 텐트를 비췄다.
텐트 밖으로 나오자 사진가 한 분이 올라와 텐트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삼각대를 펴 놓는다.
나도 엉겁결에 삼각대만 펴서 자리를 잡아 뒀다.
사람들이 더 올라오면 자리가 없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지도 몰라
이른 시간이지만 벼랑 끝에 삼각대를 세워뒀다.
대둔산은 사진 포인트가 많아서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사진 포인트 주변에는 텐트를 치지 않는데
화요일 새벽에 그 많은 포인트 중에서 하필 내가 있는 곳에 사진가가 찾아왔다.
사진을 찍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스토브를 켜고 물을 끓여 홍차를 두 잔 우렸다.
오신 분께 한잔을 권하고 나도 한잔 마시면서 속을 데웠다.
일출 시간은 7시 40분 경이다.
한 시간은 지나야 여명이 생기고 아침노을이 생길 것이다.
날이 조금씩 밝아졌지만 운해도 없고 하늘도 밋밋했다.
운해보다 상고대를 조금 기대했는데 그마저도 생기지 않았다.
아래 장군봉에 그나마 눈이 조금 붙어 있어서 장군봉을 활용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산과 하늘은 블랙과 블루에서 마젠타로 조금씩 변했지만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해가 뜨고 잠시 후 약한 북풍이 불면서 산의 안부 사이로 구름이 들어왔지만 양이 많지 않아서 금방 소멸됐다.
ND1000을 끼우고 구름이 넘어올 때 장노출 사진을 담았는데 워낙 구름 양이 적어서 밋밋한 사진이 됐다.
8시 30분까지 사진을 찍고 커피를 내려 빵과 사과, 군 달걀 2개로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짐 정리를 해서 패킹하고 셀카를 몇 컷 찍은 후 하산을 시작했다.
마천대 삼거리에 배낭을 내려 두고 눈이 쌓인 마천대를 거쳐 송신탑까지 가서 주변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내리막길은 아이젠을 찰까 하다가 그냥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어제 올라올 때 보다 눈은 더 녹아 있었다.
마천대에도 등산객들이 몇 보였는데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마천대까지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흔들 다리와 삼선계단만 돌아보고 내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12시 40분 케이블카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보니 스틱을 상부 정류장 의자에 두고 내려왔다.
안내인에게 말씀드렸더니 전화해보고 다음 케이블카로 내려 주신다고 한다.
20분 기다려서 스틱을 받았고 근무하시는 승무원께서 커피도 한잔 타 주셨다.
각박한 듯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이처럼 친절한 분들이 많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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