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6 ~27
집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해서 휴게소에서 20분 정도 쉬고
영암사지 화장실 근처에 파킹하고 나니 5시다.
집에서 3시간 소요됐다.
모산재 주차장에서 500m 정도 영암사지로 들어서면 안내표지판이 있고
그곳이 들머리다.
들머리 조금 넘어에 주차하고 오던 길로 잠깐 내려서면 된다.
오후 5시 6분에 출발했다.
배낭 무게가 18kg 정도인데 무거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동계에 비해서 5kg 정도 가벼운 무게고 올라야 할 길도 그리 멀지 않아서 몸도 마음도 편했다.
돛대바위까지는 1km다.
대부분 바위 길이다.
초입은 흙길이지만
아래서부터 위로 바위 등을 타고 올라간다.
겨우내 스스로를 비워낸 나무들이 다투듯 연초록 잎을 틔워내고 있는 초입을 잠깐 지나자
바위로 이어지는 길이다.
군데군데 밧줄이 길게 늘어뜨려 있었다.
왠만한 바윗길은 스틱을 사용해서 오르고 경사가 급한 곳은 밧줄을 잡고 올라갔다.
오늘 신발은 호카오네오네의 트레일 러닝화‘후아카 오리진스’다.
지금까지 쓰던 라스포티바 트레일 러닝화 바닥이 낡아 새로 구입했다.
가벼운 하이킹이나 일상화로 사용하려고 구입했는데 오늘 산에서 처음 테스트를 해본다.
바위에서 접지력은 릿지화나 하이킹화에 비해 조금 떨어졌지만 쿠션감은 뛰어나다.
흙에서는 착용감이 편했다.
오르면서 조망이 좋은 바위턱에서 폰으로 기록사진을 찍으며 올라갔다.
오르는 동안 오늘의 목적지 돛대바위가 먼 암릉 위에 언뜻언뜻 보였다.
두 번째 급한 계단을 오르니 돛대바위다.
사진을 찍을 때 외에는 쉬지 않고 올랐더니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산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어서
바로 촟대바위15m 위 바위 사이에 텐트를 쳤다.
2년 전 겨울에 산친구와 같이 와서 쳤던 곳이다.
돛대바위 바로 옆에도 칠 곳이 하나 있지만
돛대바위가 유명한 곳이라 아침이면 사람들이 사진 찍으러 와서 그 자리는 피했다.
마침 내가 도착했을 때 내려오신 분이 그곳에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고 나니 금세 어두워졌다.
날은 맑았는데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
별 보며 디너를 즐기려고 했는데 모든 짐을 텐트 안으로 옮겼다.
텐트가 계속 들썩거렸다.
팩다운을 하지 못해서 주변 돌을 주워서 텐트를 고정했는데
바람이 너무 강해 돌덩이를 이용해 고정한 텐트가 들썩거렸다.
주변의 돌을 더 주워서 텐트를 보완했다.
미세 먼지가 텐트 안으로 들어와 매트리스가 서걱 거렸다.
통기성이 좋으면서 결로가 스며드는 것을 막아 준다는 모노필라멘트 이너지만
강한 바람으로 인한 미세먼지 유입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텐트 안에 미니 탁자를 펼치고 물을 끓여 홍차를 먼저 마셨다.
날이 추워져서 몸을 데워야 했다..
바람은 계속 텐트를 흔들어댔다.
텐트 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봤더니 별들이 선명하게 떠 있고 초승달이 밝았다.
바람도 사나웠지만 달이 너무 밝아서 초저녁 별사진은 포기했다.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닭가슴 스테이크를 굽고 황탯국을 컵반과 함께 끓였다.
다른 반찬은 없다.
혼자 올 때는 대부분 이렇게 간단하다.
식사를 마치고 8시 조금 넘어 누웠다.
강풍이 계속 불어서 바람 부는 쪽에 배낭과 짐을 두고 뒤척이다 잠들었다.
몇 번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한 시경에 텐트 밖으로 나왔다.
별은 총총한데 은하수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바람이 잦아들었다.
이번 산행의 덤은 분명하다.
돛대바위와 은하수를 담는 것이다.
돛을 올리고 우주로 항해를 떠나는 상상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다시 들어가 잠시 더 눈을 붙였다.
3시 30분에 눈을 뜨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남서 방향에서 동북방향으로 은하수가 긴 선을 그려내며 선명했다.
카메라에 14mm 단 렌즈를 끼워서 먼저 텐트와 함께 몇 컷을 찍었다.
은하와 은하수는 다르다.
이광식의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에 따르면
우주에는 은하가 2조 개나 된다고 한다.
'은하'는 별들이 모여있는 도시다.
은하는 일반명사로 영어로는 갤럭시라 한다.
그리고 '은하수'는 지구의 밤하늘에 구름 띠 모양으로 길게 뻗어 있는 수많은 천체의 무리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서양에서는 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이 빛의 강을 ‘밀키웨이’라 고 한단다.
제우스의 부인인 헤라 여신의 젖이 뿜어져 나와 만들어진 것이라고.
우리나라에서는 미리내라고 부른다.
미리는 ‘미르’에서 나온 말로 미르는 용이라는 뜻이므로 용의 강이라는 뜻이다.
태양계가 있는 우리은하를 '미리내은하'라고도 한다.
우리은하의 지름은 10만 광년이란다.
10만 광년은 시속 300km의 고속열차로 1천억 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거리다.
20여 미터 아래 돛대바위로 내려갔다.
그쪽에 텐트를 친 분이 있어서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나와서 사진을 찍고 계셨다.
돛대바위 위로 은하수가 길게 뻗어 있었다.
돛대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많이 달라 보였다.
바위 모양이 삼각형 형태로 배에 다는 돛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같은데
돛대는 돛을 매다는 기둥을 말하니 엄밀히 따지면 돛바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형태로는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매가 날개를 접고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두꺼비가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고양이 같아 보인다고도 한다.
방향을 바꿔가며 사진을 찍다 보니 은하수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평에서 45도 정도 기울었다.
돛대바위 은하수를 어느 정도 찍고 다시 텐트 있는 곳으로 올라와 텐트와 함께 은하수를 찍었다.
은하수가 기울어서 처음 찍을 때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한동안 찍다가 별궤적을 담아 보려고 북쪽 방향으로 카메라를 고정한 뒤
인터벌 촬영모드로 세팅하고 텐트 안으로 들어와 잠시 누웠다가 20분 만에 일어나 나왔다.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동쪽을 중심으로 붉은빛이 긴 선을 만들었다.
삼각대를 펴고 렌즈를 24-120mm로 교체했다.
돛대바위를 주제로 여명을 찍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처럼 영암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황매산에서 모산재를 넘어오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사람이 많아지니 프레임 속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할 수 없다.
잠시 후 해가 떠올랐다.
운해는 없지만 돛대바위라는 상징적 바위가 있어서 괜찮았다.
얼마간 일출 사진을 찍은 후 삼각대에서 카메라를 빼 주변 철쭉꽃을 찍었다.
예전 같으면 무조건 꽃 사진을 위주로 찍었을 텐데 일출 사진을 거의 찍고 난 후에야 꽃으로 눈을 돌렸다.
아직 일출의 붉은색이 남아 있고 돛대바위를 부제로 활용하니 그런대로 사진의 균형이 맞았다.
꽃 사진까지 마무리하고 사람들도 대부분 떠나고 난 후
의자를 펴고 탁자를 꺼내서 커피를 내리고 미니토마토와 레드향 귤, 구운 달걀과 빵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깨끗한 대기 속에서 연두 연두한 자연과 아름다운 마을과 작은 저수지,
그리고 산주름의 파노라마를 바라보며 먹는 아침 식사는 백패커의 특권 같은 것이다.
느리게 또 느리게 시간을 즐겼다.
그저 산정에서의 하룻밤도 충분하지만 별을 만나고 은하수를 담고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만나는 이 충만한 시간은 덤이다.
이렇게 하룻밤 산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워진 것들로 꽉 찬 휴지통을 비워 하드디스크에 빈 공간을 확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부질없는 근심과 쓸모없는 생각과 선명하지 못한 기억을 포맷하고
내 삶에 여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텐트에서 짐을 다 꺼내서 침낭과 매트리스를 털고 배낭을 꾸렸다.
마지막으로 텐트를 거꾸로 뒤집어 먼지를 털고 폴을 뺀 뒤에 뒤집어서 바닥을 말렸다.
빛이 좋고 바람도 약하게 불어서 텐트가 금세 말랐다.
텐트까지 패킹하고 9시에 모산재로 출발했다.
100여 미터를 오른 후 북쪽으로 200미터 정도 걸어 금방 모산재에 도착했다.
모산재에서는 황매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고 나는 영암사지 쪽 바위 능선을 따라 내려갔다.
가면서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어젯밤 머물렀던 건너편 돛대바위를 바라봤다.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한발 물러서야 하 듯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계곡 건너에서 바라보는 돛대바위와 주변 풍경은
제법 웅장한 암릉미를 보여줬다.
돛대바위 바위 능선과 순결 바위 쪽으로 내려가는 바위 능선 사이에 깊은 계곡이 있는데
그 계곡은 온통 연두 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천천히 조망을 즐기며 내려갔다.
바위등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지만 순한 길이다.
조망이 좋아서 천천히 즐기며 걸었다.
오래지 않아 순결바위가 나왔다.
순결바위부터 급하게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다.
계단도 있고 밧줄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잡고 내려선다.
돛대바위에서 영암사지까지 내려온 거리는 2km 정도로 1시간 10분 소요됐다.
영암사지터에서는 내가 돌아온 황매산 기적길 A코스가 한눈에 보였다.
아래서 올려다보는 기적길 능선과 그 사이 계곡이 아침 빛에 연초록으로 환했다.
사진을 한 컷 찍고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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